묵상

모든 사람은 혼자다 - 시몬 드 보부아르

traces0 2018. 5. 20. 19:40

 

        

 

 

 문장이 아름다운 글은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사람과 같아서 쉽게 독자의 마음을 얻는다. 그러나 외모에 대한 끌림 때문에 인격적으로 악한 사람을 옹호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듯이, 아름다운 문장에 빠져 근거 없는 작가의 확신을 무턱대고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1.

 

 '그들은 가치라고 하는 것이 인간 이전에, 인간이 없이도 세계 안에 있다고 믿고, 인간은 그것을 잡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스피노자가, 그리고 이어서 헤겔이 결정적으로 이 가짜 객관성의 환영을 추방했다. 그런데 가짜 주관성도 있다. 이것은 가짜 객관성의 대칭에서 그러나 비슷하게, 목적을 계획과 분리할 것을 주장하고 계획을 단순한 놀이나 기분풀이로 보려한다. 이 주관성은 세계에 어떤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 『순간』 시몬 드 보부아르(이하 작가 이름 생략) 
 

 보부아르는 가치의 객관성과 주관성을 모두 부정한다. 
 객관적인 진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을 무의미한 기분풀이로 봐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인간이 기투(企投)인 이상,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쾌락과 마찬가지로 기획일 수밖에 없다. 행운을 잡은 사람은 곧 다른 행운을 잡으려고 한다. 파스칼이 정확하게 말했듯이, 사냥꾼이 흥미를 가진 것은 토끼가 아니라 사냥 그 자체이다(...) 목적지는 길 저쪽 깊숙한 곳에 있을 경우에만 목적지일 수 있다. 목적지에 이르면 그곳은 곧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순간』

 *기투 :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에로 자기를 내던지는 실존의 존재 방식. 하이데거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의 기본 개념이다. (출처 : 네이버 사전)

  

 인간은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사람은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구하는 그 목적에는 궁극적으로 다다를 수 없다.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초월성이 끊임없는 앞지르기인 이상 어떤 정지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한정의 기투는, 그것이 아무 데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조리하기 짝이 없다' 『무한』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기투)에서 의미를 구하지만, 사실 기투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출발했지만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허무한 결론이 난 이유는 실존주의의 인간관 때문이다.

 

 '사람은 이유 없이, 목적 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장 폴 사르트르도 「존재와 무」에서 밝혔듯이 인간 존재는 사물처럼 응고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존재해야 한다. 순간마다 그는 자신을 존재시키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기투이다.'『상황』

   

 보부아르에 따르면 애초에 사람의 존재에는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의미를 찾는 노력도 헛수고다. 사람은 단지 존재하기에 급급한 상태로 떨어진다.

   

 2.

 

 그런데 사람의 존재에 이유가 없다는 말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어떤 가정이 깔려있다. 

 사람이 존재하게 된 데는 분명히 어떤 물리적인 원인이 있을 텐데 보부아르가 이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존재하게 된 물리적 원인에 따라 존재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는데, 보부아르가 어떤 한 원인을 취사선택한 다음 존재에는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고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부아르가 선택한 사람의 물리적인 존재 원인은 진화론임이 분명하다. 인간의 물리적 존재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크게 창조론과 진화론 두 가지인데, 창조론을 택하면 사람이 목적 없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택한 것은 보부아르의 자유고, 여기서 진화론을 논박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보부아르의 인간관에 진화론과 모순되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움직이지 않는 현존의 원자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상이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이 인간 속에서 생겨난단 말인가? 그리고 또 욕망과 불안은 왜 생겨나는 것인가? 인간이 욕망과 공포를 의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욕망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인간, 명석하게 기획하는 인간은 자신의 욕망 안에서 진지하다. 즉 그는 하나의 목적을 바라고 있고, 다른 모든 목적을 배제한 채 오로지 그 목적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목적에 머무르거나 그것을 즐기기 위하여 그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 목적을 앞지르기 위하여 그 목적을 바라는 것이다.' 『순간』
    
 두 번째 인용문에 따르면 기투하는 인간은 욕망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첫 번째 인용문에는 인간이 욕망하는 이유가 인간이 원자의 집합 이상의 그 무엇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기투하는 존재이기 위해서는,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인간관이 필요한데, 그 욕망의 원인은 모른다. 원자의 집합에서 욕망은 나오지 않는다. 

   

 보부아르는 욕망(1차적 욕구가 아니라 초월에 대한)이 비물질적인 근원을 갖고 있다는 자신의 은밀한 생각을 애써 감추고 있다.
 비물질적 근원이라는 것은 신밖에 없는데, 신을 인정하면 자신의 모든 논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월의 목표를 신이 아닌, 개별 인간보다 오래 존속하는 인류에게서 찾으려고 했다가 다시 후퇴한다.

   

 '그러므로 인간 쪽으로 향해야 한다. 우리가 애초에 하늘에서 찾고 있던 저 절대적 목적을 우리는 인류 안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인류는 정말 있는 것일까? 하나의 인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헤겔은 말할 것이다. 만일 인간이 자신의 계획을 상당히 멀리까지 확대할 줄 알기만 한다면, 인간은 보편적 생성 속에서 자기 계획의 완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그런 소망이 가능할까?(...) 그(개인)가 보편성이 아닌데, 어떻게 그가 보편적 관점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한과 관계를 가지려는 인간의 노력은 그 어떤 것도 헛된 일이다. 그는 인류를 통해서, 그리고 인류 속에서만 신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제한적인 상황만을 구축할 뿐이다. 만일 인간이 무한히 팽창되기를 꿈꾼다면 그는 곧 자기 자신을 상실한다. 그는 꿈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인간』

   

 『인간』에 뒤이은 에세이 『상황』에서, 이미 봤던 결론이지만 보부아르는 개인의 기투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최종 실패한다.

   

 '기투는 개별적이며, 따라서 한정적이라는 결론에 우리는 도달한다(...) 존재의 충실성, 그것은 영원성이다. 언젠가 무너질 대상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

   

 그리고 자기 논리의 파탄을 용감히 고백하지는 못하고 횡설수설 끝을 맺는다. 
   
 '이 세상에서는 인간만이 자기가 모든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허영에 도취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삶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는 인간만이 있는게 아니다' 『상황』

   

 3.

 

 진화론을 따르자니 인간이 기투하는 존재라는 실존주의의 기본 주장이 성립하지 않는다.
 기투를 하는 인간 속 초월적 욕망의 근원이 비물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기투하는 존재인 것은 경험적인 사실이다. 
 그럼 그 욕망은 어디서 왔는가? 
   
 실존주의자들이 존재의 물리적 원인을 은폐하고 존재에서부터 바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인간이 초월성을 추구하는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따르면, 인간의 존재 이유도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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