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아서 생기는 자유는 어떤 자유인가? 무지로부터의 자유인가? 공포로부터의 자유인가?
답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33~34절)
진리가 주는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다.
문제는 일상 생활에서 나는 죄로부터 자유한 것이 아니라 죄에 자꾸 끌린다는 점이다.
죄에 끌리고 있는데 자유하다고 머릿속으로 외쳐봐야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제약으로만 다가왔다.
혼전순결. 금주. 술을 마시지 않아서 나는 항상 답답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친구가 됐다.
동성애 반대와 창조론을 이야기하면 비기독교인들은 비아냥거리고, 일부 기독교인들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부인은 못하지만 나와 의견을 같이해서 꽉 막힌 초라한 사람이 되고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버티기는 했지만 나도 그런 자리에서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참 자유를 느낀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실제로도 참 자유라기보다는 세상과의 불일치다.(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요한일서 3:13)
나는 그리스도인인데 왜 자유함이 없을까? 예전에는 많이 고민했던 문제다.
진리가 나에게 제약이 된 이유는, 신앙과 세상의 경계에서 항상 세상쪽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세상을 추구하고 쾌락과 우월감을 즐기고 싶은데 신앙 때문에, 또는 양심 때문에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죄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정반대다. 크리스찬은 신앙과 세상의 경계에서 180도 돌아선 사람이다.
경계에서 반대방향으로 돌아서면 하나님을 얼마든지 더 잘 믿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있다.
하나님은 회심한 그리스도인을 위해 하늘의 복을 예비하고 계신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에베소서 1:3)